꺼내고 싶지 않은 카드
예전 회사를 생각하면 회의실 테이블과 벽이 떠오릅니다.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회의실에서 프로젝트를 하며 보냈습니다. 여러 가지 프로젝트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력 구조조정과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사업 부문 정리와 M&A를 포함하여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하는 구조조정까지 여러 차례의 프로젝트로 영혼까지 피폐해졌습니다. 동료의 삶이 변화되는 중대한 갈등을 다뤄야 하는 일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극한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최고 의사결정자의 고민과 결정에서부터 직원 개인의 삶과 마인드까지 어떻게 연결되고 작용하는지를 눈앞에서 직접 확인하면서 HR의 존재에 대한 마음가짐과 무게감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보람도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인지 정신 승리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내려진 회사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기에 최대한 잘 헤어지도록 진심으로 노력했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한 직원이 ‘그래도 신경 써 줘서 고마웠다.’라고 말해 줄 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직하거나 매각된 새로운 조직에 가서 훨씬 더 잘된 동료들을 보면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업의 매각이나 인력 조정 또는 감축에 대한 문의가 종종 들어옵니다. 그런 시기가 도래했나 봅니다.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 저의 경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 글을 적어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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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력구조조정이나 인력감축 같은 카드를 누가 꺼내고 싶을까요. 끝까지 하고 싶지 않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업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할 수 있고 충분히 미리 감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여 대응 방안을 미리 모색하고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닐 거라고 부정하고 회피한다고 위험이 비껴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여러 경험에서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미리 여러 대안과 가능성을 찾아보고 시도한 프로젝트가 가장 무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최종 의사결정이 내려지기 전이라도 그럴 위험이 감지된다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생각해야 합니다. 시간은 상처를 줄여줍니다.
규모를 줄여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력 정리에 대한 필요성이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점점 다가오게 된다면, 최후의 순간을 가정하여 대상자 수를 줄이는 것이 우선하여 필요합니다. 난파선에 끝까지 남는 사람이 최소화되도록 미리 다른 길을 열어 사람들을 내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회사에서의 최악의 경우란, 폐업이나 일부 사업 정리를 결정하면서 직원들을 정리해고하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정리해고 요건을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리해고까지 가면 회사와 직원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피해를 보게 됩니다. 따라서, 미리 전체 채용을 중단하고 내부 인력 재배치를 실시하며,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을 때 인력을 포함한 사업 매각을 추진하고,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의 노력을 최대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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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메시지 관리는 기본입니다
사업과 조직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감지되고 빠르게 전파되기 마련입니다. 늘 그렇듯 부정적인 메시지가 더 확산되기 쉽고, 확인되지 않은 각종 루머가 조직의 힘을 서둘러 빼놓게 됩니다. 인력 구조조정까지 가지 않기 위해 갖가지 대응책을 강구하거나 안정적인 M&A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내부의 부정적인 분위기로 인해 핵심 인력들이 이탈하거나 실적 저하나 사고 발생 등으로 마지막 힘을 써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업이나 인력 조정에 대한 사전 검토와 보안은 철저히 하되 무조건 숨기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진행되는 상황과 내부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과 시기, 그리고 맥락을 고려하여 전략적인 메시지를 공유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확보하세요
결국 모든 문제를 마무리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사업의 매각이든 인력 감축이든 정리해고이든 어떤 경우에서도 최선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릇된 정보나 일부 목소리에 따라 추진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는지는 평소 활동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삶이 걸려있는 문제에 있어서는 얼마나 민감하겠습니까.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고, 어떤 결정을 하든, 결국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결과를 내어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어렵고 민감한 상황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렵습니다. 메시지 관리와 병행해야 하므로 더더욱 어렵습니다. 따라서, 채널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뢰하고 대화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은 추후 꽉 막힌 문제를 풀어 줄 열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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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활용한 리스크 대응
다양한 이슈 발생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사업의 매각 추진, 인력 감축, 구조조정 및 정리해고. 어느 프로젝트 하나도 같거나 예상할 수 없습니다. 각각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리스크의 종류와 크기가 다르고 시기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이슈들은 판단하기도 쉽지 않은데 즉시 대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모든 문제를 미리 가정해보는 것입니다. 추진 상황에 맞게 우리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물론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는 않지만, 사전에 발생 가능한 위험과 대응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이슈 발생에도 더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한 대응을 가능하게 합니다.
법적 & 실무적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리스크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먼저 검토하고 대비해야 할 것은 법적 리스크입니다. 직원의 배치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이 필요한지, 권고사직에 따른 개인과 회사의 영향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인수 합병에 따른 인력 전적에 필요한 절차는 어떠한지, 그리고 정리해고의 정당성과 절차적 요건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수반되는 법적 검토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아울러 실무에서의 효과와 영향도 예상해봐야 합니다. 법적 효과와 달리 실제 벌어지는 일들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할 수 있습니다. 실제 구성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내부 조직에서의 작용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우리 회사를 잘 아는 사람들이 논의를 통해 의사결정과 사전 검토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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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 단계에서는 원칙과 그다음이 중요
원칙에 따른 실행이 필요합니다
앞선 단계에서 충분히 고민과 논의를 거쳐 어떤 방향으로든 의사결정은 이루어지기 마련이죠. 결론만 내리는 의사결정이 아니라 실행의 원칙을 정해야 합니다. 일단 인원 감축, 사업 매각 또는 정리 등 결단이 내려지면 신속하고 담담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간혹 갈등을 피하려고 시간을 끌거나 일관성 없는 대응으로 신뢰가 깨지고 불필요한 갈등이 커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실행의 단계에서는 원칙과 일관성 있는 방향을 유지하면서 솔직한 태도로 진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무리수를 쓰거나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여 추후 관계 회복이 돌이킬 수 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갈등을 없애고 묻어두기보다 꺼내어 조심히 그리고 진심으로 다루는 태도가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다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력 구조조정이나 사업 매각 등이 완료된다고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부 인력들의 구조조정과 관계없이 다른 부문이나 구성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회사는 이들의 상처와 불안정한 마음을 어떻게 회복시켜 다시 정상화할지에 대해서도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동시에 구조조정 자체를 대하고 추진하는 모습 자체에서 남는 동료들의 마음이 좌우되기 때문에 과정 역시 넥스트 스텝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업 매각 등으로 전적하는 경우, 인수 후의 조직을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지(PMI, Post Merger Integration)에 대한 방안까지 고려되어야 합니다.
결국, 마음과 태도의 문제
일부 사업을 더 이상 회사에서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회사는 해당 부문 직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의 매각을 추진했습니다. 직원들의 근무 및 보상 조건을 최우선에 두고 가장 적합한 대상자를 찾아 최선의 협상을 했고, 매각이 결정되었습니다. 물론 사원들의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대치 국면까지 갈등이 심화되었지만, 끝까지 직원 한 명 한 명의 의견을 듣고 설득하여 대부분의 인력이 새로운 회사에 전적하였습니다. 처음엔 새로운 환경에 힘들어하고 일부 인력도 이탈하였지만, 수년이 지나고 나서 해당 인력들은 새로운 회사의 주력 비즈니스를 담당하게 되었고 그때의 결정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었던 사람들이 전적에 동의하고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은 결국 회사의 태도였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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